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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투쟁결의문_유사인간이 아닌 인간이 되기 위해 삭발한다 / 서권일 관리자202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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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9회 작성일 25-06-26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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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이너(beminor@beminor.com)

기사출처: https://www.beminor.com/news/curationView.html?idxno=23485


내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가족들이 나를 데리고 다니다가도,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던 적이 많이 있다. 백화점을 가자던 어머니는 차에 나를 기다리게 하고 쇼핑하고 돌아왔다. 내가 갖고 싶은 로봇 장난감이 아닌, 다른 로봇 장난감을 사가지고 오셔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직접 골랐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나는 9살이 되던 해에 한 특수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어릴 때는 학교 운동장에서 2층으로 바로 가는 거대한 경사로가 있던 게 신기했다. 1층엔 뭐가 있길래 2층으로 바로 올라가게 할까? 내가 조금씩 걸을 수 있었던 초 4학년 때 1층에 가보았다. 거기 들어서자 이상한 냄새가 났다. 정말 이상했다. 방이 있고, 방마다 4명에서 5명이 사는 것처럼 보였다. 학교에서 살다니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곳은 우리 반, 다른 반 어머니들이 ‘원’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원’에서 오는 학생들은 옷이 후줄근하고 냄새가 났다. 1층 냄새였다. 우리 반 엄마들은 원에서 오는 학생이랑 놀지 말라고 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그곳은 시설이었다. 그 시설은 지금은 신축공사를 진행해서 옛날과는 전혀 다른 곳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시설에서 사는 사람들은 외출하려면 시설 선생님이 따라가야 한다.


특수학교에서 초등과정까지 다닌 후 중학교를 집 근처 비장애인 학교로 다니게 되었을 때, 나는 어머니한테 특수학교를 계속 다니고 싶다고 졸랐다. 비장애인 학생들과 학교를 같이 다닌다?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냄새난다고 놀리진 않을까? 내 걸음걸이를 보고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실제로 그렇게 놀림을 받았다. ‘병-신’이나, ‘애자’라는 소리는 아주 많이 들었다. 좀비라고 놀림도 많이 받았다. 나는 그때마다 신경질을 내며 손에 집히는 물건을 내다 던져 화를 냈다. “넌 어디가 아프니?”라는 질문은 수도 없이 많이 받았다. 나는 그때마다 설명하기 난감하고 귀찮았다. 뇌병변장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고등학교에서는 나를 내신에 이용하는 학생 때문에 고생했다. 나를 도와주는 것으로 학생부에 좋게 적히려고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보이는 곳에서만 잘해주고, 안 보이는 곳에서는 나를 씨버댔다. 다른 약한 친구를 이용해서 나를 놀려댔다. 

대학교에 가면 달라질 줄 알았지만, 똑같았다. 1학년 1학기 초반에 학교를 걸어 다니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넘어져도 도와주지 않았다. 오히려 비웃었다. 너무 힘들었던 나는 수원에 사는 은사님께 수동휠체어를 받았다. 같은 과 선배가 날 밀어주었다. 휠체어를 본 사람들은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터주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왜 휠체어를 타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질까?

2011년, 대학교를 졸업한 후, 한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하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년이 지났을 때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할 수 없다는 회사는 1년 치 퇴직금을 주고 나를 해고했다. 나는 재택근무 말고는 일할 수 없었다. 집은 3층 빌라였고, 엘리베이터가 없이 계단만이 있었다.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도 월 60시간이라 어디라도 외출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전동휠체어는 집에 보관하지 못해, 내가 다니던 교회 지하 주차장에서 곰팡이가 슬 정도로 방치되어있었다.

나는 가끔 친구들을 불러 도움을 받아 놀러 다니곤 했다. 계단이 있는 3층 빌라에서, 친구들은 수동휠체어를 먼저 1층으로 내리고, 나를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 나는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외출할 수 있어서 기분은 좋았지만, 돈도 못 벌고 밥만 얻어먹는 것이 미안했다. 가족들에게도 미안했다. 집에 있으면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친구들이나 가족들한테는 대학원 준비를 하느라 일을 안 한다며 둘러댔지만, 대학원 준비도, 결국 다 핑계일 뿐이었다. 그 무렵에 아는 형이 스스로 시설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족한테 미안해서 들어갔는데, 여기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엄마가 날 시설에 넣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어느 순간 나는 죽음을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이런저런 고민이 사라지겠지? 내 미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어떡하면 쉽고 편하게 죽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때 친구가 무슨 일이라도 해보라며 장애인야학에서 교사를 해보라고 했다. 야학에서 국사를 가르치면서 나는 그제야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다음에 친구는 장애인행정도우미를 신청해보라고 했다. 친구 말을 따라 장애인 행정도우미로 1년 동안 일하면서 내가 이제껏 살면서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보았다. 공무원이 된 기분이었지만, 공무원들은 나를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사회복지 대상자로 생각했다. 진짜 내 일을 찾는 것은 정말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년 더 할 수 있었지만, 새로 신청하지 않았다. 


그다음에 잠깐 다녔던 회사는 나보다는 내 활동지원사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한 보장구 협동조합에서 급속충전기를 점검하는 일을 했는데, 내가 다루기 어려운 공구가 필요한 일이었다. 업무에 대한 설명도 활동지원사에게 하고, 지시도 활동지원사에게 했다. 그마저도 약속한 1년보다 이른 3개월 만에 해고당했다.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에서였지만, 내 활동지원사가 일을 잘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았다. 


내 짧은 인생에서 진짜로 살아있다고 보람을 느낀 것은 민들레야학,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고서부터였다. 민들레에서 나는, 우리의 장애인 운동 선배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 배우고, 활동하면서, 나는 어렸을 적에 품었던 의문 하나를 해결할 수 있었다. 

엄마가 날 차에 두고 장 보러 간 것, 시설에 들어갈까 봐 걱정하는 것, 학교에서 놀림 받는 것, 일하지 못하고 집에 있었던 것 전부 사회가 장애인을 책임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회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고 있었다. 각종 언론매체에서 장애인을 ‘도움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사람들로 내보내고 있다. 또한 일부 비장애인들의 태도는 “세금을 내는 우리가 왜 장애인들 먹여 살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선량한 시민들 볼모로 출근길 막지 말라” 등 장애인을 타자화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욕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해소할 욕망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지, ‘일반인’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전혀 다른 유전자를 지닌 다른 유사 인간이 아니다.

나는 오늘 삭발한다. 유사인간이 아닌 인간이 되기 위해서 삭발한다. 내 머리카락으로 장애인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면, 기꺼이 깎아내겠다. 내 머리카락이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서 사회 곳곳에 장애인이 함께 살 수 있는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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